[2009 불황을 메친다] '한가위' 최윤석 대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맨해튼 32스트리트 한인타운 심장부에서 반 블록 떨어진 5 애브뉴와 매디슨 애브뉴 사이, 묵직한 나무 대문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 대담한 붓글씨로 그려진 한가위 식당의 로고다. 뉴욕의 빌딩 숲을 상징하는 여섯개의 선 위에 시원하게 그려진 동그라미, 그 풍요한 보름달처럼 한가위는 불경기에도 끄덕없는 레스토랑이다. “거대한 맨해튼의 양(陽)의 기운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음(陰)의 상징인 보름달을 뜨게 했습니다.” 채식당 한가위의 최윤석(48) 대표는 미식가들이 많은 뉴요커의 요리와 도시에 철학을 입혔다. 한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선 한인타운에서 한가위는 분명 색다른 식당이다. 한가위는 ‘식도락가들의 성경’으로 통하는 ‘2009 자갓 서베이’에서 24점을 받아 뉴욕 최고의 ‘채식주의자(Vegetarian) 식당’ 자리에 올랐다. 지난 14년간 자갓 서베이에서 음식·데코·서비스 부문에서 30점 만점에 20점을 기록하면서 조용히 ‘음식 한류’의 바람을 일으킨 것도 사실은 한가위로 봐야 한다. 1994년 12월 한가위가 오픈한지 1개월 후 뉴욕타임스의 식당 비평가 루스 레이첼이 극찬을 하며 한가위는 순식간 한인타운의 보석이 됐다. 레이첼은 한가위를 떠나며 새로운 채식 한식당이 아니라 마치 스파에서 나온듯 정결하고 재충전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부드러운 목기와 중후한 도자 찻잔, 그리고 고요하고 우아한 공간에서 식사하는 경험이 너무나도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코스별로 2시간 동안의 식사 후에도 몸이 가벼워져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채식주의 식당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던 90년대 중반 맨해튼에서 한식을 기본으로 한 채식당은 분명 모험이자 도박이었다. “운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를 만난 것도, 제가 차(茶)를 만난 후 채식주의자가 된 것도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최 대표는 큰형이 있는 싱가포르를 거쳐 유학 차 미국으로 왔다. 당시 셋째 형 형기씨가 플러싱에서 순댓국·삼계탕·감자탕 등 토속 전문식당 버드나무집을 운영했고, 얼마 후 자신이 맡게 됐다. 지난 91년 최윤석씨는 차에 매료되면서 180도 다른 사람이 된다. 단전호흡을 시작하며 담배와 술을 끊고, 골프까지 그만 두었다. 2년 후에는 고기까지 끊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1993년 8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최씨는 한국적인 인사동의 사찰음식 전문식당 산촌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제가 채식주의자이면서 손님에게 고기를 팔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지요.” 94년 잘 나가던 버드나무 식당을 팔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로 작정한다. 산촌 같은 채식당을 여는 것이었다. 동갑인 아내 한혜정(테리 최)씨는 완벽한 파트너였다. 초등학교 때 싱가포르로 이민 싱가포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한씨는 샤넬·랑콤 등지에서 경험을 쌓고 뉴욕으로 온 마케팅 전문가였다. 싱가포르의 다문화적이고, 개방적인 환경에 익숙한 한씨는 남편에게 물었다. “왜 뉴욕에 한국식당은 바비큐 밖에 없지요?” 당시 뉴욕의 식도락가들은 한식에 대한 호기심은 있어도 옷에 배이는 고기 냄새를 불편해 했다. 최씨 부부가 채식당을 열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만류했다. 식당업에 잔뼈가 굵은 형 춘기(만두바 대표)씨와 형기(뉴저지 감미옥 대표)씨는 물론 주위에서 모두들 ‘위험부담이 크다’고 조언했다. 최씨 부부는 산나물·버섯·두부 등을 주재료로 단출한 메뉴로 한식 채식당 한가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한인과 타민족 고객 비율을 50 대 50으로 잡았다. “메뉴가 약할 경우 인테리어와 서비스로 고객을 사로 잡을 계획이었어요. 한국의 건축가를 초대해 절간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꾸몄지요.”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했고 마루엔 방석을 깔았다. 구리로 천장을 기와처럼 꾸몄고, 국악을 틀었다. 미국인에게는 한국적으로 느껴지고, 한인들에게는 모던한 분위기로 꾸몄다. 반찬과 주요리가 한꺼번에 차려지는 보따리식 상차림 대신 애피타이저·수프·메인디시·디저트 등 코스별로 메뉴를 나누었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 대신 야채·버섯류로 국물맛을 냈고 배와 키위즙으로 소스를 만들었다. 부인 한씨는 마케팅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편지, 브로셔가 들어간 보도자료를 정성껏 만들어 찻잔과 함께 주요 언론사에 돌렸다. 1개월 후 뉴욕타임스에 한가위 리뷰가 실리면서 한가위는 순식간에 ‘스타 식당’이 됐다. 그후로 14년간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과 자갓 서베이, 미셸린 가이드 등 식당 가이드에서 한가위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메뉴도 계절에 따라 매년 진화를 거듭했다. 신선로와 구절판, 대롱밥, 호박죽, 울릉도 더덕샐러드, 민들레와 아보카도 샐러드, 우전차 그리고 수라정식(Emperor‘s Meal), 송이버섯 정식, 오개닉 메뉴까지 한가위는 ’채식주의자들의 신찬(神饌)‘을 통해 거듭 진화해 왔다. 한인 고객들은 왜 고기가 없냐, 반찬이 부실하냐는 불평을 쏟아냈다. 불만족한 한인들이 사라진 대신 타민족이 쇄도해 손님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연이은 호평과 입소문을 듣고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한 유명인사들도 찾아왔다. 리처드 기어, 그위네스 팰트로, 니콜 키드만, 카메론 디아즈,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 케빈 클라인, 아티스트 오노 요꼬,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등 유명인사들이 다녀갔다. ‘한가위’를 성공시킨 최씨 부부는 지점을 내는 탐욕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2003년 파크 애브뉴의 고적한 빌딩 내에 지리산 차를 소개하는 ‘프랜치아’를 냈다. “찻집은 제가 한가위를 이만큼 만들어준 미국에 대한 보답이자, 한국산 차를 홍보하고 싶은 열망으로 낸 것이었지요.” 최씨 부부는 내년쯤 어퍼웨스트사이드에 더 고급스러운 한가위를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LA에 한가위를 내는 것도 구상 중이다. 박숙희 기자